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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례(冠禮)란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는 예식(禮式)이다.
 남자는 15세가 넘어 20세 미만에 땋아내렸던 머리를 올리고, 머리에 복건(僕巾), 초립(草笠), 사모(紗帽),탕건(宕巾) 등의 갓(冠)을 씌우는 의식을 행하였다. 이것은 일상 생활에 있어 이제부터는 철이 없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 예의를 지켜야 하고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음을 인식시키고,

 

 또 밖으로는 맡은 바 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자기의 원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하고, 그래서 어른으로 대접을 받게 하는 데 그 의의와 목적이 있다. 그래서 혼인도 관례를 치른 다음에야 할 수 있다.


  언제부터 관례의식이 행하여 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주자가례'에 관례 조항이 나와있는 것을 보면 그 이전에 이미 관례의식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주자가례'가 전래된 것이 고려말엽이라 사대부(士大夫) 양반 사회에 널리 행하여지기는 조선 초엽이 아닌가 한다. '고려사' 광종(光宗) 16년 기록에 "왕자에게 원복(元服)을 입혀 태자로 삼다" 한 것과 의종(毅宗) '상정례'에 "왕자에게 원복의 의(儀)를 행하다" 하는 기록이 있어 이를 관례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 원(元)나라의 영향을 크게 받던 시대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원 나라의 의복을 입혔다는 기록일 것이며, 그 이상의 의의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관례를 치르는 연령은 15세 이상이 되어 정신적으로는 예의를 지킬 만하고, 범절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이며, 육체적으로는 성인으로서의 외모를 갖춘 때였으나 조선 중엽이후 왜란과 호란을 겪고 조혼(早婚)의 풍습이 생기면서부터 관례를 치르는 연령이 낮아져 10세 전후에 관례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러다 남자 10세 전후가 되면 관례의식을 치르지 않고도 초립이나 복건을 씌우는 풍습이 생겼다. 그래서 관례를 치르면 엄연히 어린 아이가 아닌데도 초립을 쓴 아이라는 뜻의 "초립동(초립동)" 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하였다.

  관례는 남자라면 누구나 다 치르는 것이 아니라 양반과 천민으로 구분되어 있던 조선시대의 천민(賤民) 사회에서는 관례가 없었다. 이러한 관례의식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동안 지역과 가문에 따라 조금씩 변모 하였다. 그래서 조선조 숙종(肅宗)때 이재(李縡)가 편찬한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적힌 그대로를 따르기 힘들어 갑오경장(甲午更張)을 전후하여 개화사상(開化思想)이 퍼지면서 그 의의를 잃어가다가 고종(高宗) 32년인 서기 1895년에 단발령(斷髮令)이 내린 후로는 우리나라에서는 관례의식이 사라졌다.


  


  관례를 치르려면 주인(主人)은 정월달 중에 한날을 정하여 3일전에 사당(祠堂)에 나아가 고(告)해야 한다. 주인이란 관례를 치르게 될 본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나, 고조(高祖) 할아버지 이하 종가(宗家)의 대(代)를 잇는 종손이 아닐 때에는 반드시 종가의 어른이 주인이 된다. 종가의 어른에게 연고가 있으면 종가의 다음가는 어른이 주인이 되고. 종가의 종손으로서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안 계시고 종손 자신이 관례를 치를 때에는 본인 스스로 사당에 나아가 고한다. 사당에는 술과 과실을 올리고 재배(再拜)한 다음 향탁(香卓)앞에 꿇어 앉아 고사(告辭)를 읽는다.

초가례
(初加禮)

  초가례란 갓을 쓰고 복식을 갖추는 관례의 첫 번째 예식이다. 손님(손님)이 장관자에게 음(揖)을 하고 자리에 서면, 홀기(笏記)를 보면서 손님을 도와 예식을 거행하는 찬(찬)은 장관자의 머리를 빗질하여 상투를 만들어 올리고, 만건을 씌운다. 그러면 손님(손님)이 축사(축사)를 한다. 이때부터 망건을 이미 썼다는 뜻에서 장관라를 관자(관자)라 부른다. 축사가 끝나면 찬(찬)은 치포관에 비녀를 꽃아 복건(복건)과 함께 손님에게 건네고, 손님은 관자에게 복건을 씌운 다음 그 위에 치포관을 씌운다. 그러면 관자는 두 손을 얼굴 앞으로 들고s 허리를 굽혀 읍을 하고 물러나와 옆방으로 들어간다. 관자는 사규삼을 벗고 심의(심의)를 입으며, 큰 띠를 매고 신(신)을 신고 대청으로 나와 남쪽을 향하여 선다.

재가례
(再加禮)

  손님이 관자에게 읍을하면, 관자는 무릎을 꿇고 앉는다. 손님은 찬으로부터 초립(草笠)을 받아들고 관자 앞으로 가서 축사를 한다. 축사가 끝나면, 찬은 초가례 때에 씌운 복건과 치포관을 벗기고 손님은 관자에게 초립을 씌운다. 그러면 관자는 손님에게 읍을 한 다음, 방으로 가서 심의를 벗고 조삼(早衫)을 입으며 큰띠를 풀고 혁대(革帶)를 매며 가죽으로 만든 콧박신을 신고 대청으로 나와 남쪽을 향하여 제자리에 선다.

삼가례
(三加禮)
  손님이 관자에게 읍을 하고, 관자가 꿇어 앉으면 손님은 찬으로부터 복두(腹頭)를 받아 들고 관자 앞으로 가서 축사를 한다.축사가 끝나면, 찬은 초립을 벗기고 손님은 복두를 관자의 머리에 싀워주고 찬이 갓끈을 매에 준다.그러면 관자는 일어나 손님에게 읍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조삼을 벗고 난삼(欄衫)을 입으며 띠를 매고 목이 긴 가죽신을 신고 대청으로 나온다. 이 삼가례로써 관례는 끝난다.

초례
(醮禮)
  관자가 난삼을 입고 나와 제자리에 서면, 찬(찬)은 잔에 술을 따라 들고 관자의 왼쪽에서고 손님은 관자에게 읍을 한 다음, 술잔을 받들고 북쪽을 향하여 서서 축사를 한다. 손님이 축사를 마치면 관자는 두 번 절을 하고 남쪽을 향하여 서서 그 술잔을 받는다. 손님은 답례로 두 번 읍을 한다. 이 때 찬이 포와 혜의 접시를 가지고 관자 앞으로 나오면 관자는 무릎을 꿇고 앉아 술을 땅에 조금씩 세 번 붓고 나서 조금 마셔 맛을 본 다음, 술잔을 놓고 남쪽을 향하여 두 번 절을 한다. 그러면 손님은 답례로 동쪽을 향하여 두 번 절을 하고, 관자가 찬에게 두 번 절을 하면 찬도 답례로 두 번 절을 한다. 술잔을 받아 땅에 조금씩 세 번 붓는 것을 제주(祭酒)라 한다. 이는 땅의 지신(地神)께 먼저 드린다는 뜻이다. 제사를 모실 때나 술을 마실 때나, 농부가 들에서 일을 하다가 술을 받아서도 먼저 지신에게 세 번 붓고 먹는다. 땅 위에 사는 인간으로서 땅에 감사를 나타내는 일이라 하겠다


(字)

  술을 따르는 의식인 초례를 마치면, 손님은 관자에게 자(字)를 지어 붙여준다. 이를 빈자관자(賓字冠者)라 한다. 손님은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여 서고, 찬은 손님 오른쪽에 선다. 주인은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서고 집사는 주인 왼쪽에 선다. 그리고 관자는 주인의 옆 서쪽에서 동남쪽을 향하여 선다. 손님은 관자의 자를 짓고, 자사를 한다. 자(字)란, 관례를 치러 선년이 된 이후에는, 관자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 하여 손님이 지어 주고 부르게 하는 제2의 이름이다. 자는 손님이 짓지 않을 경우에는 그의 아버지가 짓는 것이나, 호(號)는 스승이나 본인 스스로가 짓는다. 자와 호는 짓는 때와 지어주는 사람이 다르며 자 보다는 호를 더 많이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