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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인이란 남녀간의 결합을 일정한 의식을 거쳐서 사회적으로 공인을 받는 것이다. 현행 혼례에는 크게 재래식 구식혼과 서구식 신식혼, 종교의식 등으로 치르는 혼인이 있다. 결혼식의 절차는 세계각국마다 그들의 풍속에 따라 다르지만 선진국일수록 그 제도와 절차가 매우 간결하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결혼식은 우리나라와 같은 복잡하고 형식화된 절차 없이 당사자가 합의한 날에 어느 때라도 교회나 특별히 지정된 장소에서 목사나 신부의 주례로 간단히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부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예법에 따라 행해진 혼례 절차는 매우 번거로웠다. 그 근본은 무조건 성대히 하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면서도 정중히 하는 것이 혼례의 의의이다. 따라서 현대식 혼인에 있어서도 옛날의 도의를 벗어날 수 없으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간소화하고 현대화하자는 뜻에서 가정의례준칙이 발표되었다. 결혼식이 형식과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꿈과 신뢰와 사랑을 다지는 의식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혼인제도의 기원은 원시시대의 습관에서 발달하였으며 원시 시대에는 남녀가 공동으로 생활하고 그 결과 공동자손을 가졌다. 육체적으로 강하고 용맹한 남자는 가족의 보호와 생활권을 맡고, 여자는 자식을 낳고 그 양육을 맡는 것이 오랜 습관이 되어 관습에 의해 인정되고 법률의 승인을 받아 하나의 사회제도가 성립된 것이다. 우리나라 혼인의 변천은 문헌에 의하면 부여(夫餘) 시대에는 일부일처제였으나, 실제로는 일부다처제였고 투부(妬婦)와 간부(姦婦)는 죽이는 관습이 있었다.

  옥저(沃沮)에서는 여자는 10세가 되면 남편이 될 소년의 집으로 가서 그곳에서 성장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일정한 값의 돈을 받고 혼인하여 부부가 되는 매매결혼에 의한 민며느리 제도였고, 삼한(三韓)에서는 몇 쌍의 부부가 공동세대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원시적인 공동생활로 짐작된다. 또 고구려에서는 혼인이 결정되면 신부집에서 뒤란에다 작은 집을 짓고 신랑과 함께 거처했다가 낳은 자식이 크면 비로소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는 모계씨족 시대의 유풍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다양한 혼인 풍습이 고려를 거쳐 조선으로 들어와서는 유교에 의한 윤리관에 의해 통제를 받고 혼례가 성립하게 되었다.

『 의 혼 → 납 채 → 연 길 → 납 폐 → 친 영 → 전안례→
교배례,근배례→상수,사돈지→우귀,현구례→폐 백』

의 혼 (議婚)
  신랑과 신부집이 서로 사람을 보내어 상대의 인물, 학식, 인품, 형제 유무 등을 조사하고 뜻이 맞으면 두 집안이 혼인을 의논 한다하여 의혼(議婚)이라고 하며 이것을 달리 면약(面約) 이라고도 한다.혼인을 의논 할 때에는 먼저 성씨를 살펴보고 동성동본은 혼인이 성립되지 않으며, 동성동본이 아닌 성씨라 해도 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보일 때, 또는 지금까지의 혼인 결과 좋지 못했을 때는 혼인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불혼(不婚) 조건은 지역적인 사정이니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납 채 (納采)
  납채란 사성을 신부집에 보내는 의식을 말한다.사성은 '사주(四住)'를 말하며, 혼담에 합의를 본 다음 남자쪽의 주혼자가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써서 중매인이나 친한 사람을 시켜 싱부짐의 주혼자에게 보내 정식으로 청혼하면 그것을 신부집에서 받고 약혼이 성립된다. 사주를 보내는 법은 간지(簡紙)를 다섯 번 접어 그 한가운데에 쓰며, 흰 봉투에 넣되 봉하지 않는다. 용지는 창호지 등 백지로 하되 크기는 길이 30cm, 폭 25cm 정도로 한다. 이것을 다섯 칸으로 접어 붓글씨로 쓴다. 육십갑자에 따른 간자를 쓰며, 사성을 쓴 종이를 접을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접어 봉투에 넣는다. 봉투는 사성의 종이와 같은 것으로 만들면 된다. 다음에 겉은 다홍색, 안은 남색인 네모난 비단 겹보자기를 만들어 네 귀퉁이에 금전지를 달아서 그 보자기에 사주를 싼 다음 간지에 '근봉(謹封)' 이라고 써서 그것으로 띠를 두른 다음 보낸다. 사주를 보내는 뜻은 천간(天干),지지(地支)에 의하여 궁합 등 앞으로의 길흉도 보고 또 혼례식 날짜를 정하는 택일에도 참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연 길 (涓吉)
  연길이란 혼례의식을 치룰 좋은 날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사주를 받은 신부 집에서는 신부의 생리일 등을 고려해서 혼인 날짜를 잡아 신랑집으로 보내는데 내용을 백지에 써서 사주 보자기에 싸서 근봉에 끼워 보낸다.

(1) 의제(衣製) : 연길서장을 받은 신랑측에서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을 신부측에 알리는 의제장을 보낸다.

(2) 의제송서식(衣製送書式) : 의제장을 보낼 때에는 편지 겉봉에다 '의양동봉(衣樣同封)' 이라고 쓴다.

납 폐 (納幣)
  납폐는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대하여 혼인을 허락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보내는 예물로 '봉채(封采)=봉치' 또는 '함' 이라고도 한다. 이때 예물은 신부용 혼수와 예장(禮狀) 및 물목을 넣은 혼수함을 결혼식 전날 보낸다.

[납폐서식]
예물은 빈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두 가지 이상으로 하고 열 가지를 넘기지 않는다. 납폐서장은 또한 '혼서지' 라고도 하는데, 보통 납폐서장 없이 함만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납폐의 예를 갖추기 위해서는 같이 보내는 것이 좋다. 보통 납폐서장은 길이 36cm 폭60cm 정도의 백지를 9칸으로 접어 양쪽을 1칸씩 비우고 7칸에 쓴다. (단, 재혼시에는 5칸에만 쓴다.)

[ 혼수 봉하는 방법 ]
혼수함 안에 고운 종이를 깔고 먼저 혼서지를 넣는다. 이 혼서지는 죽을 때 관 속에 넣어 저승에 가지고 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일부종사(一夫從事)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에 혼수를 넣는데 옷감을 맞춰 접어서, 홍색을 담고 위에 청색을 담아 종이를 덮은 다음 혼수감이 놀지 않게 싸리나무 가지나 갈대로 통개를 하여 비단실로 아래위를 감고 함에 넣는다. 홍색 보로 함의 네 귀를 맞추어 매고, 남은 끈을 모아매서 종이를 감아 '근봉(謹封)' 이라고 쓴다. 외올베로 멜빵을 매고 참대받침 얽음에 싸서, 다시 새끼나 명주로 멜빵을 맨다.

친 영 (親迎)
  친영을 다른말로는 혼행(婚行)이라고도 하는데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혼례식을 올리고 신부를 맞아 오는 예로써 이 절차에는 고래(古禮)와 속례(俗禮) 두 가지가 있다. 고례에서는 신랑이 저녁 때 신부 집으로 가서 전안례만 올리고 신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교배례와 근배례를 올리고 하루 전에 마련한 신방에서 첫날을 보낸다. 신부는 이튿날 아침에 시부모를 뵙고 현구례, 즉 폐백을 드리고, 또 친척들에게 인사하는 상호례를 끝내고 사흘동안 시댁에서 머물고 난 다음 일단 친정으로 돌아갔다가 우귀(于歸) 또는 신행이라고 해서 정식으로 시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 고례에는 양가의 거리, 기타 사정으로 도저히 전안례를 치르고 난 뒤 신부를 데리고 올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에는 신부 집에서 모든 의식을 치루고 신랑은 첫날밤을 신부 집에서 지내며 계속 사흘을 묵은 뒤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신부는 이때 시부모님께 폐백을 드리고 현구례를 한다.

전안례 (奠雁禮)

  신부의 부친이 신랑을 문 밖에서 맞아 들이면, 신랑은 북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리고 기러기를 쟁반위에 올려 놓으면 시자가 받아간다. 이때 신랑은 머리를 숙이고 엎으렸다가 일어나 두 번 절한다.(옛날에는 산 가러기를 가지고 예를 올렸으나 너무 번거로워 보통 나무로 깎은 기러기를 채색하여 사용하거나, 종이로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혼례에 기러기를 사용하는 것은 기러기가 신의를 지키는 새이며, 한번 교미한 한 쌍은 꼭 붙어 살고 다른 상대와는 교미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전안례의 절차]
주인영서 우문외 → 서읍양이입 → 시자집안이종 → 서취석→ 포안우좌기수→ 북향궤→치안우지→ 면복홍→ 소퇴재배→ 주인시자수지

교배례와 근배례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대면하여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예식이다. 교배례와 근배례를 합쳐서 초례라고 한다. 식장 준비는 대청이나 뜰에 동서로 자리를 마련하고 병풍을 남북으로, 교배상은 한가운데 놓는다. 상위에 촛대 한 쌍을 켜놓고 송죽 화병 한 쌍과 백미 두 그릇, 핡 한 자웅을 남북으로 갈라 놓는다. 세숫대야에 물 두 그릇을 준비하고 술상 두 상을 준비해 둔다.

[ 절 차 ]
서지동석(서지동석):신랑이 초례청 동편 자리에 들어선다. → 모도불출→ 서동부서 → 진관진세서관우남부관우북 → 서부각세수건 → 부선재배 → 서답일배 → 부우재배 → 서우답일배 →.서읍부각궤좌 → 시자진찬 → 시자각짐주 → 서읍부제주거효 → 우짐주 → 서읍부거음부제무효 → 우취근서지전 → 시자각짐주 → 거배상호서상부하 → 각거음부제무효
( 이상으로 초래청에서 초례를 끝냄으로써 혼례식이 끝난다. )

상수 (床需) 와 사돈지 (査頓紙)
  상수는 신부 집에서 혼례식을 거행할 때 사용했던 음식을 신랑 집에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때 보내는 물품명을 기록한 물목을 함께 보내는데, 이 물목은 육어주과포(肉魚酒菓脯)의 순으로 적고, '사돈지'라 하여 신부 어머니가 신랑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도 함께 보낸다. 이 상수와 사돈지로 신부 어머니의 음식 솜씨와 신부 집의 범절을 평가받는다.

우귀 (于歸) 와 현구례
  우귀는 '신행(新行)' 이라고도 하는데, 신부가 정식으로 신랑집에 입주하는 의식이다.

현구례는 신부가 신랑의 부모와 친척에게 첫인사를 하는 의식으로 우귀일에 한다. 이때 신랑의 직계존속에게는 사배씩 하고 술을 권한다. 이 경우 시조부모가 살아 있어도, 시부모를 먼저 뵙고 그후에 시조부모를 뵙는다. 그 다음에 촌수나 항렬의 순서에 따라 인사를 드린다.